보여줄 순 없겠지 뒷면





* 보여줄 순 없겠지 _ 언니네 이발관




_ 이석원 사

생각지도 못했던 허전함을 느끼네
내 안에 숨겨온 마음을 너는 알고 있을까

누군가를 생각해 함께 있는 너에게
내 안에 숨겨둔 마음을 보여줄 순 없겠지







집과 이버구 선생 앞면



긴 다리도 아니지만, 책상 밑에 선반을 끼워놓는 것이 다리에 거리적거려서서 항상 책상 옆으로 빼놓으면 부모님은 재차 선반을 책상 아래의 제 자리로 찾아둔다. 몇번을 빼놓고 다시 꽂아놓는 것을 반복하여, 나는 이제 웬만해선 책상에 앉지 않는다. 노트북을 들고 내려와서 방바닥에 엎어지던가, 벽에 기대어 앉아 내가 놀이기구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방을 엉망으로 만드는 아들놈을 보다못해 원위치로 물건들을 옮긴 것이겠지만, 그 선한 의도와 달리 나의 책상은 앉는 자리가 아닌 너저분하고 잡다한 물건들을 올려놓는 곳으로 전락하고 만다. 다시끔 한번, "야, 너는 책상이 뭐 이러냐"고 한소리를 듣지만 그 책상에서는 내 짧은 다리도 저리고 허리까지 아프다.

11월, 한국에 2주동안 들어왔었던 이버구 선생께서는 서울을 그리워하며 저번 주에 다시 타향으로 떠났다. 돌아가기 전 날, "재입대하는 기분이지?"라며 짓궂게 물었을 때 펑하고 울어버리던 누나의 모습과 함께, 엄마와 나는 그녀의 우는 것을 놀리던 모습들이 스쳐지나간다. 나는 선반 하나에도 짜증이 올라왔다 내려왔다하다가 결국 포기수순을 밟는 것에 반하여, 누구는 한국에 대한 미련을 여전히 갖고 있다. 하긴 집이라는 게 원래 애증의 공간이 아니던가.

들어와있는 동안, 노멀씨(no mercy)놀이도 몇번 못하고 조모임때문에 공항에 배웅도 못 해줬지만, 엄마가 전해주길 공항에서 누나는 그렇게 울었다고 한다. 3-4년전 처음 유학을 떠날 때, 인천공항에서 누나를 보내고 엄마는 집에서 울다지쳐 누우실 정도로 앓아 울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리고 그런 날들이 지나, 나는 곧 독립할 생각을 조금 해본다. 포이동일까, 영락없이 천안행일까. 구직활동의 결과물에 따라, 가족들과 차츰 떨어져 지낼 날을 대비한다. 이버구 선생과 같을 지 아닐 지, 혼자 살아보면 그때는 알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본다.




여름 안에서 뒷면







와, 무슨 춤을 추든 저 손발과 좌우 안맞는 안무는 요즘은 쉬이 볼 수 없는, 고삐풀린 망아지같은 90년초반의 아이돌의 매력이다. 상품찍혀나오듯 짜맞추고 짜맞춰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인터뷰하는 2009년의 아이들을 보다보면, 이 시절의 개개인이 가진 에너지가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처럼 텁텁하고 싱그럽게 느껴진다. 왜 지금의 2pm은 저런 맛이 안 나올까.



방어 앞면



아는 동생은 제 철이어서 찰지게 기름진 방어를 먹으러 노량진을 가자고 하지만, 난 가까스로 그것을 방어하고 있다. 뭘 방어하고 있는 걸까? 그깟 방어 한마리 회로 먹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부산에서 부산을 떨며 방어 한마리를 방어하다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오는 용인 IC에서 그 방어를 용인하여, 방어 회를 잡수셨다는 얘기가 신문에 오르든 말든, 이런 말장난 따위를 농으로 던지며 한심한 짓거리를 하는 나도, 재미없고 유치한 작자들의 손길만이 우리들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들을 하곤 한다.

조금씩 뜸하던 다시 블로그 질을 해보려고 장난감 키보드에 손을 올린 다음, 이제는 불수의근이 되어버린 내 입근육처럼 연동운동으로 손가락을 지마음대로 움직이며 장난질을 시작하여 본다. 손이 기억하고 있던 것들 쏟아내리라, 움직이리라, 기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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