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바보같은 표정이었지만. 앞면





세상에서 가장 바보같은 표정이었지만.

 

집 나온지 4일밖에 되지 않아 이때는 아직 싱싱했다. 정말 넓은 공원이었던 만큼 사람도 많았고, 공원에서 사람들은 소프트볼도 하고, 야구도 하고, 음악도 하고, 식사도 먹고, 배도 타고, 약도 하고, 잠도 자고, 춤도 추고, 마차도 타고, 요가도 하고, 공연도 하고, 수다도 떨고, 조깅도 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 공원에서는 AT&T전화기가 터지지 않고 그 덕에 배터리도 다 닳아버렸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풀밭 나무에 기대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잔디밭에 누워 황혼볕을 즐겼다. 널브러져 혼자 가장 여유로운 표정으로 즐길 때였다.

 

도시가 마치 꿈틀대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던 건 아마 그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서울을 달리던 강변도로 위에서 였다. 신호등도 없는 넓은 도로가 여지없이 막히고, 도로와 다리 위을 메운 지각각의 차들이 지각각의 방향으로 흘러다닌다. 잘 사는 동네 바로 옆을 지나, 사람들과 오토바이 퀵서비스들에 들볶이는 거리들, 그 옆에 즐비한 아파트, 그 뒤쪽의 구시가지 골목길들에 군데군데 산꼭대기까지 빼곡한 판자집들, 그리고 밤을 모르며 활기를 먹어치우는 번화가와 걔중에 나즈마히 고요함을 유지하는 동네들도 모두 서울이란 도시의 유유한 스펙트럼이었다.

 

중첩된 대기가 주는 도시적 긴장감에 지치기도 하고, 그 속도감과 달리 반복되는 지겨운 나날들은 또다른 일탈을 꿈꾼다. 이 도시는 그러한 곳이다. 사람을 견딜 수 없는 수렁으로 몰아넣곤 한다. 그러한 마음들속에 찾아본 것은 나의 여행사진이었다. 그건 내가 동경해온 가장 한가로운 날들의 표정이었을 것이다. 천장이 넘는 그때의 사진들을 보고나서 별별 기분들 끝에,  의외로 나는 나의 고향 서울을 꼭 껴안고 싶어졌다. 물론, 이 곳에서는 저런 멍청한 표정은 짓지 못하겠지만, 갑갑함의 한편은 그냥 그러고 싶어졌다. 




시그램 앞에서, 앞면





여행이 흔적을 남긴 건 사진들 뿐이다. 2008년 여름 7월 4일 독립기념일 밤, 비를 쫄딱 맞으며 여의도 불꽃축제만 못하다고 기억되는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뉴욕 맨하탄 이스트리버에서 봤다. 저녁을 먹은 후 부터, 조금은 서로 심사가 틀어져서 짜증이 섞이기 시작한 나와 친구는 엄청난 인파와 불꽃놀이의 지체 뿐 아니라 볼품없음과 쉼없이 내리던 비에, 짜증지수가 한없이 올라갔었던 걸로 기억난다. KPF뉴욕사무소에서 인턴을 하던 그 친구는, 서울에서 놀러 온 나 때문에 하루종일 소호와 그리니치빌리지, 모마 등으로 이리저리로 움직여야 했기때문에 지쳐있었고, 어디를 갈지 고르지 못하던 나의 우유부단함은 거기에 한 몫 거들었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인파에 쓸려 거리쪽으로 나오자 밤이 늦었고, 교통편은 주변에서 찾을 수 없었다. 맨하탄 동편에서 서북편의 암스테르담ave.의 80th st.까지 바로 돌아갈 방도가 없어서, 48th st.쯤의 이스트리버에서 걷기 시작하며 한 에비뉴씩 서쪽으로 이동하였다. 비는 계속 내렸고, 짜증과 짜증으로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습기찬 공기 사이로 그 비를 맞으며 걸었다.

말없이 걷고 또 걷다가 시그램빌딩 앞에서 멈췄다. 내가 Mies의 시그램 타령을 그 날 하루종일해서 그랬는지, 친구는 그 시그램빌딩 앞에 멈춰주었다. 비는 계속 왔고, 그 빌딩의 정문 앞에서 잠시 비를 피했다.

"이 건물이 가진 특징 중에 뭐가 제일 특이한 것 같니?"

친구는 내게 물었다. 밤이 늦어 검은 하늘 위를 끝까지 올려다보며 찾을 수 있는 그 검정 건물의 특징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바우하우스 관련 책에서나 보던 성냥갑 건물의 기원이라도 얘기해야했을까,라고 생각할 무렵 친구는 내게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시그램이 멋진 점은, 건물 앞의 넓은 공간을 아무 것도 안 채우고 건물을 뒤쪽으로 밀어내서 지었다는 점이야. 맨하탄의 초고층빌딩 중에 저렇게 많은 공간을 비어내고 지은 건물은 거의 이것 밖에 없어."

미스의 거대한 건물 앞에서 하늘로 향하던 눈을 낮췄을 때, 좌우 양쪽으로 직사각형의 형태로 물을 채운 공간과 하얀 블록으로 다져놓은 널찍한 공간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 멀지감치로 파크ave.가 보였다. 내 친구가 했던 그 말이 다른 전문가들의 눈에도 진짜 의미가 있는 빈 공간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때 만큼은 '아, 그렇구나.' 하면서 보게 되었다. '와, 저런 걸 보다니.'라는 놀라움도 함께 했다. 이틀 후 7월 6일 맨하탄 바닥을 전전하며 혼자 돌아다니다가, 나는 저 사진을 찍었다. 시그램빌딩의 본 모습은 아니지만, 그 앞 공간을 찍었다. 그리고 여행의 흔적은 사진으로 남는다.

여행사진을 보면서, 내가 눈에 찍은 실체보다 그때 들은 이야기가 먼저 생각나는 것은 아마 특별한 일은 아닐 것이다. 공간에 실린 말들 속에서, 가끔 비오는 하늘 위로 고개를 치켜올려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하던 그때의 일들이 생각난다. 나는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시선을 낮춰 고개를 폈지만, 친구의 감각에서 여행의 실질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spot들만을 전전해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영하의 바람 앞면


* by the sea _ suede




1. 운전면허 갱신기간이 다가와서야 운전을 시작한다. 비로소 12월, 나는 눈길에서도 운전을 하고 있다. 동네 꼬마들이 만들어놓은 눈사람은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하며 겉장만 단단히 유리처럼 딱딱하다. 주차장 한 구석에 놓인 얼어붙은 무릎 높이의 눈사람을 보며, 영상의 기온에 사라지기 전까지 유예기간을 세어보았다. 날이 곧 풀리면 네 웃고 있는 입모양과 눈모양은 흐물흐물 씰룩대다가 모양을 잃겠구나, 아니면 지금처럼 말 못하는 냉동창고의 미라로 살든가.

2.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가, 근 2-3년동안 받았던 편지나 카드 쪽지 뭉텅이, 인화된 사진들, 영화 공연 티켓들, 영수증들이 나온다. 보다가 조금은 웃고, 그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랑 서랍정리하다가 이런 게 나오더라고 전화를 하고, 버려질 것들은 한편으로 향한다.

3. 극장표들은 왜 시간에 따라 글씨가 사라질까. 모양잃은 얼굴처럼 글씨가 없는 노란표들의 향연은, '이제 더 이상 나를 기억해주지 말아주세요. 찾지말아 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박제된 기억이 되느니, 사라질 권리가 내게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4. 오늘은 하루종일 강추위에 외출하기 힘든 날씨라고 한다. 일기예보로 꼬꼬마 눈사람은 하루를 더 살 수 있는 생명연장을 선택받았지만, 그가 이 영하의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겉면을 얼리는 것을 진정 바라고 있을 지, 양지 볕에 뚝뚝 떨어지는 액체로 동정따윈 필요없이 몸을 녹일 지는 알 수 없을 일이다. 적어도 서투른 운전솜씨로 그 옆을 지나가는 나에겐, 서투르고 투박해서 예민하지 못한 내겐 말이다.





보여줄 순 없겠지 뒷면





* 보여줄 순 없겠지 _ 언니네 이발관




_ 이석원 사

생각지도 못했던 허전함을 느끼네
내 안에 숨겨온 마음을 너는 알고 있을까

누군가를 생각해 함께 있는 너에게
내 안에 숨겨둔 마음을 보여줄 순 없겠지




* 이 사진에서 나 찾아내는 사람에게는,,,,,, 고기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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